
ⓒ 2006 WATV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4월은 우리 영혼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는 유월절이 있는 축복의 달이기도 합니다.
저희 네팔 카트만두 교회에서도 이번 유월절을 많은 식구들과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3월말의 출석 식구가 유아를 포함해서 1,100명을 훌쩍 넘었기에 이번 유월절을 과연 시온에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유월절 때 앉을 자리도 없이 성전이 꽉 찼었는데, 그때보다 식구가 훨씬 늘어난 올해는 모든 식구가 예배를 드리기에 교회가 너무 비좁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까운 곳에 넓은 장소를 빌려서 유월절 예배를 드리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 발견한 장소는 교회에서 차로 약 10~15분 거리의 체육관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식구들이 다 모여 예배드리기에 괜찮은 것 같아서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유월절 당일에 경기가 있다며 임대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실제 경기도 없이 그저 기독교를 싫어하는 그곳 책임자의 개인적인 방해였습니다.
저희는 다른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유월절 2주 전에 교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호텔의 실내체육관을 임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뻤고, 이제 유월절 준비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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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일주일 앞두고 네팔 전역에 대대적인 시위가 시작된 것입니다. 네팔은 원래 입헌군주제 국가인데, 지난해 현 국왕이 절대왕정을 선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의회가 해산되어 현재까지 수상직은 공석으로 있고 내각의 장관들은 왕의 심복들로 교체되었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시위가 잇따랐고 진압하는 경찰들과 시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잇달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잠시 동안만 있을 것 같았던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유월절을 앞둔 안식일, 갑자기 ‘껄퓨(통행금지령)''가 내려졌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TV에서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통행금지라고 속보를 전했습니다.
전부터 내전이 일어나 대중교통도, 학교도, 상점도 며칠째 계속해서 휴업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식구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아침 일찍부터 걸어서 부지런히 시온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온에 도착하자마자 먼 거리에 있는 식구들은 기도예배를 빨리 마치고 다시 부랴부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3시간을 걸어서 온 식구들은 지친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몇 시간을 걸어서 오셨지만 잠시 쉬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고, 어린 유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내려진 통행금지령, 그것도 유월절을 채 한 주도 남기지 않은 안식일 아침에 이런 일이 생기자 정말 막막했습니다. 진리 안에 갓 들어온 새 식구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시온으로 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바깥 사정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 거리에 있는 식구들은 각 처소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도록 하고 교회 근처에 있는 식구들만 시온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이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급하게 돌아가는 식구들이 아무 사고 없이 돌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서 돌아갔기 때문에 도중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되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식구들을 지켜주시길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이런 비상시에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문의하는 식구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습니다. 다들 처음 당하는 상황이다 보니 조급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전화를 했고, 저는 각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유월절을 앞둔 안식일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유월절에 관한 내용을 식구들에게 전하는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통행금지로 인해 거리에 다닐 수도 없으니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까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네팔의 모든 식구들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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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아직까지 식구들의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직접 가서 얘기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라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잠깐 통행금지가 풀리는 시간(아침 2~3시간, 저녁 2~3시간 정도는 시장에 다녀올 수 있도록 잠시 통행을 허용합니다)을 기다렸다가 부지런히 걸어서 유월절을 전하러 갔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식구들은 나라 사정이 어지럽다보니 걸어서 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애간장이 탄다는 말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계속해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밤 시간에도 통행금지가 내려져 아침저녁으로 잠시 해제되는 짧은 시간 외에는 길에 다니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유월절이 낼모레인데 차도 다니지 않고 걸어서도 나다닐 수 없으니 유월절에 많은 식구들이 올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통행금지가 풀리더라도 길에서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기 때문에 길에 나가는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군인과 경찰들이 무조건 시위자들로 간주해서 폭행하기도 하고, 시위가 벌어진 지역을 지나게 되면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는 등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러니 걸어서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전에 예약했던 장소를 취소하고 유월절을 교회에서 지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어떻게든 교회에 식구들이 전부 모여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모두가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는 역시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위는 점점 더 심해지는데, 유월절 이틀 전에는 통행금지령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내려지고, 유월절 하루 전날은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리고 유월절 당일은 통행금지령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식구들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은혜롭게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차는 다니지 않았지만 많은 식구들이 걸어서 시온에 왔고 먼 곳에 사는 식구는 4~5시간을 걸어와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3월말 출석식구가 1,143명이었는데, 유월절을 지킨 식구들의 숫자가 1,155명이나 되었습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전날까지, 아니 당일까지도 정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모든 길을 다 열어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어머니께서 네팔에 전화를 주셔서 많은 축복을 주시고, 유월절을 많은 식구들과 은혜롭게 드릴 수 있다고 주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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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미리 내다보시며 자녀들을 보살펴주시는 우리의 어머니!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고, 한 영혼 한 영혼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주신 어머니!
유월절 날 통행금지령이 풀렸을 때 저는 이것이 어머니의 얼마나 많은 희생의 기도와 눈물로 이루어진 기적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자녀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생명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더 깊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식구들도 어려운 입장에서 유월절을 지키다 보니 유월절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된 것 같다며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며 저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만약 이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면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유월절 예배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더 힘든 상황이 되었을 것인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다 이끌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유월절을 지키기에는 교회가 비좁은 상태였지만, 정말 일사천리로 유월절을 은혜롭게, 어려움 없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버지 어머니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유월절 예배가 끝나고 식구들이 돌아간 뒤 그날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다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해제되어 다음날 무교절도 은혜롭게 지킬 수 있었고 오후예배를 다 드리고 난 뒤 오후 6시쯤에 다시 통행금지가 내려졌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 동안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시위가 엄청 심하게 연일 이루어졌고 심지어 사람이 총에 맞아 죽기도 했는데, 우리 시온 근처에서는 이러한 시위가 한 번도 심하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잠깐 사람들이 모이다가도 소리 없이 사라지고 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거나 식구들이 오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어려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온의 주변에는 신기하게 아무 일도 없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들이 온전히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도와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더 많은 식구를 찾아 이처럼 늘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께 보답하는 네팔 카트만두 시온의 자녀들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