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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전도기행

[스리랑카] 럭키 형제님과 마밀라 형제님을 도구로 삼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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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월요일]
- 인천공항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의 인연으로 진리를 받게 된 럭키 형제님과 아밀라 형제님을 내일이면 7개월 만에 만날 수 있게 된다.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작년 10월 아·태장애인경기 때를 떠올려 본다. 부산 지역 식구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랑을 전하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나섰던 연인원 1만 7천 명의 서포터즈들이 대회에 참가한 34개국 선수단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는 가운데 스리랑카 배구팀을 응원할 때 배구팀 임원이었던 두 분을 만났다.

형제님들은 우리의 열렬한 응원을 감동한 듯 지켜보더니 공항 입국할 때 환영 나왔던 서포터즈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도대체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교회이기에 이렇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느냐고 진리를 궁금해 했다. 간단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이분들은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틀 후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베푼 환영 만찬에서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마치 친형제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두 분은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모두 아름답다''며 우리와 의형제 맺기를 자청해왔다. 의형제라기보다 우리는 하늘의 친형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의 교회 서포터즈의 열띤 응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럭키와 아밀라,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선명했던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형제님들은 귀국 전날 교회에 와서 진리를 영접했고, 김해공항을 떠나면서도 진리를 갈구하는 이들을 모아놓을 테니 꼭 한 번 스리랑카에 와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다. 이제 사랑하는 스리랑카 식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해외 선교 경험이 있는 박 선교사와 함께 둘이서 스리랑카행에 나섰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전화를 쉽게 걸 수 있지만 우리가 거는 전화를 그쪽에서 받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유월절은 가까워오는데 폭우로 인한 단전 사태로 연락이 두절되어 가슴만 태우기를 한 달여.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2유월절 일주일 전에 극적으로 다시 연락이 되었다.
아무리 먼 곳에 흩어져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자녀들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다시 한번 진한 감동을 느낀다.


[5월 13일 화요일]
- 비행기 안에서 위기의 순간을 넘기다 -


고도 39,000피트 상공에서 지상에 점처럼 작게 반짝이는 도시들을 보며,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작고 미미한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이 땅에 오신 아버지 어머니께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상하이 홍콩 상공을 거쳐 인도 뭄바이에 착륙하고, 그곳에서 다시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타게 된다.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열네 시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데 시간은 왜 그리 더디 흐르는지.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이 땅에 자녀 찾아오실 때에 이러한 마음이셨을까? 열네 시간이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데 육천년의 기나긴 세월과 시간은 어떠하셨을까?

뭄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하기 30분 전.
‘스리랑카는 우기 때라서 비와 천둥 번개가 계속되고 있다던데 ….'' 생각하는 순간,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갑자기 비행기 후미에서 큰 굉음이 나더니 좌우로 비행기가 마구 요동친다. 아마도 번개가 꼬리 쪽을 스쳐지나가 꼬리 쪽 엔진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창문으로 바깥을 보려 했지만 두터운 먹구름 층 속을 비행하고 있는지 시커먼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 앉은 박 선교사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식구들이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데 분명 지켜주시리라.'' 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사이 비행기는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급강하했다.

‘아! 나의 사명은 여기까지인가?'' 순간 나는 지나온 삶의 단면들로 파노라마 현상을 체험하게 했다. 그 뒤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니 연약한 믿음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떨어지던 비행기는 다시 평형을 잡았고 그제서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왔다. 이후로도 기체가 계속 요동하자 많은 탑승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구토를 했다. 기내식은 다 쏟아져 버렸고 승무원들은 비상구를 확인하고 꼬리 쪽에 이상이 없나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비행기가 30분 정도 계속 흔들리더니 저 멀리 공항 활주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날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5대의 비행기들이 악천후 때문에 모두 착륙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만 무사하게 착륙을 했으니 스리랑카에서 하나님을 바라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항에 내려 출구를 나오는데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지연된 비행기로 인하여 혹시나 하고 탑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인파 중에서 우리를 걱정하며 마중 나와 있던 럭키 형제님과 아밀라 형제님을 만났다. 마치 육천 년 만의 해후처럼,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가움에 서로 포옹하며 그동안의 그리움을 달랬다.

공항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원래는 럭키 형제님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폭우로 인하여 그 일대의 모든 전기가 끊어져 버렸다고 한다. 전기도 없고 더운데 우리가 고생할까 염려하는 형제님은 일단 다른 지역의 숙소를 권했다. 우리도 그 편이 함께 말씀을 공부하기 좋을 것 같아 형제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그날 저녁 10시경 럭키 형제님과 아밀라 형제님, 아밀라 형제님의 부인, 또 직업군인인 럭키 형제님의 동료, 이렇게 4명이 숙소를 찾아와 약 1시간 30분 동안 말씀을 배우고 돌아갔다. 진지한 이분들의 모습에서 그간 애타게 진리를 찾고 있었던 우리 식구였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5월 14일 수요일]
- 럭키 형제님 집에 침례 주러 가다 -


부푼 가슴을 안고 럭키 형제님 집에 간 우리는 그곳에서 침례를 받기 위해 모인 9명의 가족들을 만났다. 럭키 형제님의 어머니와 부인, 일곱 살 된 큰아들과 다섯 달 된 둘째아들, 또 럭키 형제님의 여동생과 그 두 아들, 어제 만났던 럭키 형제님의 동료, 아밀라 형제님의 부인까지. 이들에게는 이미 럭키 형제님과 아밀라 형제님이 침례의 축복에 대하여 알려준 상황이라서 간단한 설명만 한 다음에 바로 침례가 이루어졌다.

ⓒ 2002 WATV
침례가 이루어지면서 저마다 축복에 대한 것을 깨닫고 있었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차례대로 침례 받을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성령이 거룩한 형체로 비둘기처럼 강림하는 역사가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로서 들리는 듯 했다.

이곳의 현재 날씨는 영상 40도. 아열대 기후라 일년 열두 달 고온다습하다고 한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팔에 땀방울이 맺히고, 습기가 워낙 많아 먼지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후조건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우리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고 오랜 시간 인내하며 공부한다는 것은 스리랑카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리 말씀을 듣는 데 나름대로의 정성을 보이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이곳에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폭우로 인하여 전기가 끊어지고 모든 것이 어렵다 하여도 이곳의 식구들이 이토록 마음 문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의 돌보심이 뼛속 깊이 느껴진다.


[5월 15일 목요일]
- 숙소에서의 공부와 유월절 준비 -


ⓒ 2002 WATV
럭키 형제님과 부인이 아기와 함께 숙소에 방문하여 영혼 문제와 생명과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두 분은 모두 이해를 잘했으며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에 대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또한 내일 제 2유월절을 지키는 방법과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눴다.
서울에서 가져온 밀가루와 포도주로 내일 제2유월절을 지키려 한다. 스리랑카에서의 처음 드리는 유월절 예배!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길 기도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5월 16일 금요일]
- 제2유월절 예배와 하나님의 축복 -


유월절 아침 9시. 럭키 형제님과 함께 럭키 형제님 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형제님의 집에 도착하여 정성껏 준비해놓은 식사를 한 뒤 한국에서 준비해 온 ‘WE♥U(We love you) 비디오를 함께 시청했다. 럭키 형제님은 그때의 추억이 연상되는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아름답다, 굉장하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국에 가 보지 못한 식구들도 하나님의 교회 형제자매들의 사랑이 실로 어떠했는지 이제 비로소 실감하는 것 같았고 몇몇은 감동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비디오를 보고 난 뒤 표정들은 너무도 밝았고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 형제자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정성스러움이 서서히 그들의 행동 속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비디오를 시청한 뒤 자연스럽게 말씀 공부에 들어갔다. 모두는 유월절의 축복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으며 말씀을 깨닫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집안의 마리아상을 아예 치워버렸고, 공부 도중에도 깨닫자마자 침례를 받고 싶어 했다.

ⓒ 2002 WATV
이때 아노마 자매님(럭키 형제님의 여동생)의 남편인 파트모아시디가 침례를 받았다. 사실 그는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아홉 명에게 침례를 줄 때 처음 얼굴을 대했다. 그때는 썩 달갑지 않은 얼굴이어서 내심 우리는 많은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우리를 자기 가족 이상으로 대하여 살펴주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세족예식이 시작됐다. 처음해보는 낯선 광경이라 다소 어색한 점들도 있지만 식구들은 정성스럽게 예배에 임했다. 모두 세족 예식을 마친 뒤 유월절 성찬 예배가 시작되었다. 난생 처음 불러보는 찬송이지만 나름대로 부르려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 시간 안상홍 하나님,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예배는 매우 진지하였으며 영어를 모르는 식구를 위하여 럭키 형제님이 이따금 어려운 부분들을 현지어로 통역해 주었다. 유월절로 영생의 축복을 받은 식구들의 얼굴은 모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5월 17일 안식일]
- 진리 말씀이 영의 눈을 밝히다 -


날씨가 무더운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대개 8시나 9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직장으로 10시에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 7시부터 분주하다. 안식일 오전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 2002 WATV
스리랑카에서 처음 지키는 안식일이라 감회가 새롭다. 오늘은 또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게 될지 사뭇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안식일 오전예배를 마친 뒤 더위에 시달리는 우리를 걱정하며 바람 부는 해변으로 가서 공부하자고 한다. 약 20분 거리의 인근 해변으로 가서 그곳에서 말씀 공부가 다시 시작되었다. 식구들은 성경 가운데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질문인즉, 자신들이 성모(聖母)로 알고 있는 마리아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국 식민지를 거친 그들에게는 성공회(영국 국교) 교리로 인해 마리아 숭배 사상이 일부 잔재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마리아는 인간일 뿐 신격화될 수 없음을 성경을 통하여 증거하였다. 이내 식구들은 지금까지 믿고 마음에 뿌리 박혀있던 성모 마리아가 우상일 뿐 결코 복의 근원이 아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저녁에도 계속 말씀 공부 시간을 갖자고 조르기에 이르렀다.

갑작스러운 진리의 빛에 스리랑카 식구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지만 어떠한 질문일지라도 성경을 통해서 찾아 증거하는 우리 일행의 모습을 경탄의 눈길로 쳐다보면서 이내 성경을 주목했다. 성경의 예언을 살핀 후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우리 일행은 아버지 어머니께 거듭 감사드렸다. 예수님 당시 안식일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역사가 바로 이러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비롯된 오랜 바벨론의 불법의 사슬을 어떻게 깰까 하여 고민하고 기도했었는데 이토록 순식간에 깨질 줄이야!

공부를 마치고 다시 럭키 형제님 집으로 돌아왔다. 럭키 형제님의 매형인 파트모아시디 형제님이 조카가 왔다면서 우리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도 침례를 달라며 자청하였다. 잠시잠깐의 공부를 한 뒤에 침례가 이루어졌다. 안상홍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영혼 구원 때문이었으며 열매 맺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니 파트모아시디 형제님은 너무도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스리랑카 식구들은 이제 진리에 대해 더욱 큰 관심과 흥미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서서히 그들의 영혼 속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큰 깨달음을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는 이곳의 형제자매님들에게 성령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느끼며 놀라고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5월 18일 일요일]
- 영의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 -


영적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스리랑카의 형제자매님들도 하나님께 선물을 드리기로 계획한 듯 이른 아침부터 기쁜 소식이다. 럭키 형제님의 부인 수지바 자매님이 가게에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를 전도하여 침례 받으러 온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도착할 때부터 집안 공사에 여념이 없었던, 럭키 형제님의 아버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침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늘도 두 영혼이 이곳 스리랑카에서 또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모두 13명의 영혼이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아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이분들의 순수한 믿음 앞에서 우린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 2002 WATV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마귀의 정체에 대하여 공부가 이어졌다. 비록 이곳에 있는 분들에게는 오랜 시간이었지만 다른 때보다 잘 참아주고 있었으며 말씀에 상당한 흥미와 관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평생을 좋게만 생각해오던 바벨론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비록 당황하는 눈빛이었지만 모두 성경의 말씀이라면 인정해야 한다는 성경 중심의 신앙이었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침례나 말씀 공부가 이뤄질 때 점차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가고 있으며, 아밀라 형제님의 부인인 아쇼카 자매님은 이젠 침례 떡을 손수 준비하기까지 하였다. 침례식이 거행되는 장소를 더욱 깨끗하게 닦아놓고 바닥에 수건을 깔아 준비해놓기도 하였다.
외국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부터 그들에게 얼마나 본이 되어야 하는지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다. 또한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현재 외국에 파송된 우리 선교사들에게 큰 힘을 주시기를 ….


[5월 19일 월요일]
-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날 -


우리는 아침 일찍 럭키 형제님과 함께 체육부 장관 비서인 코디카라 여사를 만나러 갔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럭키 형제님은 어제의 바벨론의 정체에 대하여 부대에서 벌써 말씀을 전하였다고 한다. 바벨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부대 안의 한 사람에게 성경과 다르게 행하는 바벨론의 오류를 지적했더니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 하면서, 이제 본인이 접한 진리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형제님은 또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 말씀을 공부하러 오겠다고 한다.
“때가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하신 말씀대로 속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우리는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었다.

ⓒ 2002 WATV
스리랑카 체육부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코디카라 여사를 만났다. 한국에서 가져온 앨범과 서포터즈 활동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었더니 보면서 계속 아름답다는 감탄만 연발했다. 사무실에 함께 한 직원들에게도 보여주며 한국의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장관에게 보여줘서 감사를 꼭 표하겠다면서 성도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했다.

현재 이곳의 온도는 35도. 폭우가 쏟아진 뒤라 조금은 온도가 내려간 셈이다.
식구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날 때 럭키 형제님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배웅했고 나머지 온 식구들은 공항으로 환송을 나와 우리가 떠나오는 마지막 모습까지 함께 해주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언제 준비했는지 비둘기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작은 모형과 스리랑카 지도가 그려져 있는 벽걸이 액자를 주며 새예루살렘 성전에 꼭 걸어달라는 것이다.
어떻게 비둘기를 준비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스리랑카 지도를 새예루살렘 성전에 걸어달라고 당부할까! 마지막 때에는 열방에서 비둘기처럼 날아올 것이라는 예언이 떠올랐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이미 이곳 식구들의 마음은 동방 땅 끝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예루살렘 어머니께로 비둘기처럼 날아갔음을 재삼 느끼며 진한 감동을 받았다.
지금의 이별은 결코 이별이 아닌 천국에서의 만남이 될 것임을 서로 약속하고 다짐하면서 우리 일행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돌아보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착륙할 때 악천후로 인하여 비행기가 추락할 뻔했고, 또한 전기가 3일 동안 들어오지 않았으며, 56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3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근래에 없던 엄청난 일들을 겪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방해와 장애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속히 마지막 예언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 2002 WATV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의 콜롬보 공항을 이륙하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형제자매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40도를 육박하는 아열대성 기후에 마치 수십 년 전 우리나라를 연상케 하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구원을 갈급하는 형제자매를 보며, 좋은 여건과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부족해도 불평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회개가 저절로 우러나왔다. 다시는 그러한 불평불만 없이 이러한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아직 찾지 못한 십사만 사천 막내 하루 속히 찾아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복음 사명을 열심히 이루어야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깨달음 ―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 부산 식구들이 보여준 사랑이 한 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아름답게 열매 맺는 것을 보며, 올해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영광을 나타내겠다는 식구들의 하나 된 마음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반드시 복음이 전해지리라 확신한다.
안상홍 하나님, 어머니, 다시 만나는 날까지 이곳 식구들의 마음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해 있도록 함께 하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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