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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찾아 떠나는 여로
[2003-09-01 오후 5:54:00] 미개척지였던 뭄바이를 일으켜 세워 주신 아버지, 어머니
거대한 대우주 복음사업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가운데서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개가 번쩍임 같이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기만 한 당신의 자녀들에게 또다시 새롭고 큰 축복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음성을 마음에 새기며, 말씀의 기갈로 인해 힘없이 고통하고 있을 가엾은 내 형제자매를 찾기 위해 파송된 선교의 사명을 뼈에 새기며, 늘 부족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셔서 소중하고 값진 선교의 사역을 담당시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인도 뭄바이를 향한 여장을 꾸렸습니다.
저와 목사님 그리고 네팔에서 복음을 함께 했던 룰룬 형제님은 2001년의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을 네팔에서 지키고 난 다음, 인도 뭄바이(봄베이)를 향한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난 지 이제 갓 일년이 된 룰룬 형제님은 영어 미디엄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이번 인도 뭄바이 교회 개척을 위해 선뜻 자원해 주셨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한 편인데다 복음 동역자로서의 경험도 많지 않아 내심 염려도 되었지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보내심을 입은 것이면 분명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졌습니다.
이틀간의 버스 여행과 기차 여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뭄바이. 뭄바이는 일년 내내 섭씨 28도와 40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여름이 지속되는 무더운 날씨이지만 나름대로 아름답고 시원한 이국의 풍경을 간직한 멋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우기인 몬순 시즌[6~9월]이 끝나고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때였습니다. 우리에게 뭄바이는 낯선 미지의 땅이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생각하면서 크고 아름다운 교회와 많은 형제자매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일단 짧게나마 머물 수 있는 단기 숙소에 여장을 풀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마 약속하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마땅한 교회 건물을 찾으면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도 하면서 낯선 도시 뭄바이 익히기를 시작했습니다.
뭄바이 시는 세계 제2의 인구 밀집 도시로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의 대략적인 소개에 의하면 힌두교도가 65%, 모슬림이 23%, 기독교인이 1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사람도 많았지만 높은 건물들도 도시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도시 외곽이 나오는 인도 최대의 도시이자 최대의 관문이며, 최대의 증권 회사가 있는 곳이 바로 뭄바이 시였습니다. 때문에 인도의 수도는 비록 뉴델리지만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는 뭄바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언어가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주변의 많은 도시에서 ‘뭄바이 드림'을 꿈꾸며 돈을 벌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몰려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거의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곳은 어느 곳일까. 부지런히 찾는다고 찾아보았지만 처음으로 방문한 낯선 곳이라 모르는 것이 많아서인지 한 달이 다 되어 갔지만 식구도, 교회 건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룰룬 형제님은 무더운 날씨에 장시간 걸어 다니기까지 해야 하는 고된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매일 손수건을 흠뻑 적셔서 가지고 다니시면서 연신 얼굴이며 팔을 닦았습니다. 발에는 물집까지 생겨서 걸을 때마다 통증이 나타나는지 약간 절룩거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아무 내색 없이 잠잠히 인내하며 열심히 복음에 임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울 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한달 정도가 다 되었을 때쯤 드디어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란. 그 환희는 참으로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러나 모슬렘(이슬람교도)이었던 집주인은 당연히 치워 주어야 할 그들의 우상인 모스크 사진을 치워주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을 치워야 하겠다면 집을 줄 수 없겠노라며 우리들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나가달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다시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상 복된 길로만 인도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늘 확신하면서도 여관을 찾기 위해 밤거리로 나서고 보니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할 단 한 명의 우리 형제도 찾지 못하고 교회 건물마저 구하지 못한 그 삭막한 도시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고 황량한 사막에 혼자 남은 듯한 외로움에 온몸이 떨려 왔습니다.‘한 사람의 형제자매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한 영혼만이라도….'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고귀한 생명의 유월절을 가지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러 왔건만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문전박대만 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걸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천하를 호령하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악의 땅으로 친히 오셔서 아무런 조건 없이 당신의 손을 내미셨건만 인생들은 오히려 자기를 만들어 주신 창조주를 몰라보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일삼았습니다. 그래도 목숨까지 아낌없이 버리시며 자녀들을 위해 묵묵히 고통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져 왈칵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세상이 영접치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멸시와 천대 받으신 하늘 아버지안상홍님, 하늘 어머니. 죄인된 우리 위해 걸으신 37년의 희생의 길이 이런 외롭고 서럽고 쓸쓸한 지독한 아픔의 길이었단 말인가? 오! 진정 사랑이신 나의 하나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딘가에 있을 내 형제자매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하나님께서는 뜻밖에도 여건과 환경이 무척이나 좋은 곳에 교회 건물을 허락해 주셨고 우리는 비로소 인도에 흩어진 우리 식구를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부터는 어디에 정착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찾기 위한 전도에만 마음과 뜻을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처음에 우리가 얻으려 했던 건물은 지금의 우리 식구들이 드나들기에는 치명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열심을 내어 전도를 하는 가운데 12월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달 마지막 안식일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식구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나가 되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식구를 찾는 간절한 마음도 더 뜨거워져만 갔습니다.
아, 그런데 바로 그 날. 낯설고 물선 땅 뭄바이 시에서 우리의 첫 하늘나라 식구 로드니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무슨 슬픈 일이 있는 사람처럼 힘이 없어 보이던 형제님은 우리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사실 참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아서 신부나 교회 안에서 먼저 되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고 말 뿐 시원한 해답을 주지 않아서 너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이상하게도 교회에 있는 많은 마리아상, 십자가, 성인상 같은 것들이 제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어 요즘은 교회도 잘 안 가게 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진리의 말씀에 갈증을 느끼는 형제님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잃어버린 사랑하는 가족임을 느끼면서 가슴이 저며 옴을 느꼈습니다. 룰룬 형제님 또한 드디어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고 감동이 되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고귀한 말씀을 그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거북등과 같은 논바닥처럼 하나님의 달고 오묘한 말씀을 너무도 달고 맛있게 받아들이는 형제님의 입술에서는 늘 “맞습니다”라는 시원한 대답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날부터 매일 열심히 진리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고, 형제님은 시들어가는 중환자가 병에서 회복되어가듯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생기를 되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영접하도록 권면하자 형제님은 뭄바이에 있는 우리 하나님의 교회 식구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물어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소속된 교회는 출생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삶의 양식을 좌우하며 개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소속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뜻 무어라고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목사님께서는 “당신이 첫 멤버가 될 겁니다”라고 솔직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형제님의 얼굴에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그는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에도 생활을 옭아매는 전통이라는 껍질을 깨뜨리지 못해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오기보다 답답한 껍질 속에서 살아가려는 연약한 인생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보물을 찾고도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영혼이 너무나 불쌍했고, 한편으로는 식구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비로우신 나의 하나님! 연약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눈과 마음이 오직 영원한 생명이 있는 당신의 말씀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육으로 난 모든 염려를 극복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하늘 가는 밝은 길로 다시 행하게 하고 그의 발길과 마음을 당신께로 온전히 인도하지 못한 저희의 부족함을 용서하시어 당신께서 보내주신 뜻대로 이제 우리 식구를 당신께로 인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목사님과 룰룬 그리고 저는 비록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속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향해 간절히 울부짖고 있는 서로의 애타는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낙망치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그 영혼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식구를 찾아 또다시 길거리에 나섰습니다.
12월 마지막 안식일을 앞둔 금요일 저녁. 교회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로드니 형제님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연락을 끊었던 형제님이 갑자기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빛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로드니 형제님은 그 다음날인 안식일에 죄 사함과 구원의 약속을 받고 하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내려지는 안식일 예배까지 지켜서 하나님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더욱더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로드니 형제님의 가족까지도 시온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빈슨, 스티븐, 카밀로, 클레톤 등등. 하늘에서 잃어버린 형제자매들이 ‘기다렸고 찾았던 바로 그 진리'라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천국보화를 소중히 간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직장 일로 인해 두바이에 가게 된 로드니 형제님은 그곳에서도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이번 유월절에는 절기를 함께 지키도록 좋은 열매를 맺어 인도했고, 간절히 기도하며 날마다 어머니 뵙기를 갈구하던 식구들도 마침내 한국 방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전도에 함께 참여하는 식구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감동시키는 것은 엘로힘 하나님을 깨달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간절한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아직도 못다 찾은 형제와 자매를 어서 속히, 그리고 많이 찾아서 아버지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는 자녀들이 되게 해달라는 그 간절한 기도소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늘 아버지께로 상달되어 뭄바이 식구들이 성전에 가득가득 차고 인도 각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설 그날이 앞당겨지리라 확신하고 또 손꼽아 기대해봅니다.
미개척지였던 뭄바이를 일으켜 세워 잃어버린 하늘 가족이 모여 살 아름다운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까지 친히 불러모아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 힘의 원천이 되시며 자녀들을 위해 날마다 간구하여 주시는 안상홍 하나님, 어머니. 당신은 진정한 우리의 참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어머니 진정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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